성경은 신구약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구약은 인간의 불순종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으며, 그것이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과 계획을 알려주신다. 결국은 메시아를 통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는 길을 알려주신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란 인물이 나온다. 1절에 그에 대한 묘사를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그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고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but) 문둥병자였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 없이 살면 행복할 거 같지만 누구나 "그러나"를 가지고 산다. 그 문제는 늘 그 사람을 사로잡게 되어 다른 것을 다 무력하게 만들고 만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어떤 왕이라 할 지라도 '불치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미난 것은 그 해결책을 가진 사람은 바로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여종이었다. 그가 엘리사라는 선지자를 알려준다. 그 엘리사 선지자는 또한 사람을 보내 해결방법으로서 요단강에 7번 몸을 씻으라고 전해준다. 그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방법과는 다른 것을 제시한 엘리사에게 화를 낸다.
복음도 이와 같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가진 방법과 논리를 제시하며 복음을 거부한다.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질문을 해 댄다. '왜 그리도 쉬운가?' '왜 예수만이 길인가?' '나를 왜 장군 취급을 안해 주는가?' 복음이 문제가 되는 이유중 하나는 시장바닥 아줌마나 박사 10개 가진 사람이나 전부 같은 메시지를 던져 준다는 것이다. 나아만의 문제는 왜 나를 장군취급하지 않고 문둥병자 취급을 하느냐에 있다. 하지만 의사에게 환자는 환자일 뿐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이 문제는 아무도 해결해 줄 수없다. 그 어떤 지식이나 종교나 선행이나 도를 닦는 것도 타락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복음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복음이 어렵고 박사만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Good News일 수 없다. 우리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글을 못 읽던 할머니지만 큰 형이 기도해주면 눈물 흘리며 감사하다고 늘 하시던 할머니! 성경을 읽지는 못하지만 들으면 기뻐하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복음은 위대함이 더욱 느껴진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란 인물이 나온다. 1절에 그에 대한 묘사를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그는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고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but) 문둥병자였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 없이 살면 행복할 거 같지만 누구나 "그러나"를 가지고 산다. 그 문제는 늘 그 사람을 사로잡게 되어 다른 것을 다 무력하게 만들고 만다.
그런데 아무도 그것을 치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어떤 왕이라 할 지라도 '불치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미난 것은 그 해결책을 가진 사람은 바로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여종이었다. 그가 엘리사라는 선지자를 알려준다. 그 엘리사 선지자는 또한 사람을 보내 해결방법으로서 요단강에 7번 몸을 씻으라고 전해준다. 그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방법과는 다른 것을 제시한 엘리사에게 화를 낸다.
복음도 이와 같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가진 방법과 논리를 제시하며 복음을 거부한다.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질문을 해 댄다. '왜 그리도 쉬운가?' '왜 예수만이 길인가?' '나를 왜 장군 취급을 안해 주는가?' 복음이 문제가 되는 이유중 하나는 시장바닥 아줌마나 박사 10개 가진 사람이나 전부 같은 메시지를 던져 준다는 것이다. 나아만의 문제는 왜 나를 장군취급하지 않고 문둥병자 취급을 하느냐에 있다. 하지만 의사에게 환자는 환자일 뿐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며 이 문제는 아무도 해결해 줄 수없다. 그 어떤 지식이나 종교나 선행이나 도를 닦는 것도 타락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복음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복음이 어렵고 박사만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Good News일 수 없다. 우리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 글을 못 읽던 할머니지만 큰 형이 기도해주면 눈물 흘리며 감사하다고 늘 하시던 할머니! 성경을 읽지는 못하지만 들으면 기뻐하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복음은 위대함이 더욱 느껴진다!!!
출처 : Monterey 153
글쓴이 : JJ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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