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자기 신앙에 대한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보통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간증은 지은 죄를 증명하며 자복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 이런 것은 누구나 다 있는 것이고 매우 평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 신문이나 TV방송이나 라디오방송, 또는 잡지, 책 등에서 간증되는 것이나 또는 실제로 여러 교회를 순회 다니면서 간증하는 것들을 보면 매우 특별적이고 놀라운 얘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군대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반군대 경험얘기가 아니라 아무나 갈 수 없고 할 수 없는 특수부대 얘기 같은 것들입니다. 보통 신앙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는 아무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지고 체험할 수 있는 간증들이 주류를 이루고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보통 교인들에게는 없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에게만 베풀어주시고 역사해 주신 그래서 보통 교인과 간증하는 그들과 엄청난 신앙이 차이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서로 먼 나라 사람 같은 이격을 느끼게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게 바로 간증거리가 아니냐고 강조하지만 그러나 이런 간증거리가 복음의 합당한 신앙으로 구원을 이루는 데로 일치가 되지 않고 어떤 특이한 신앙의 한 체험이나 주관적 신앙의 독특함으로 보여지고 그들만이 갖는 하나님과의 특별하고 별다른 관계를 가진 것처럼 여겨진다면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 된 자로 부르심에는 여러 채널이 있고 경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한 몸 되어 서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려지는 간증거리들은 매우 기적적인 부분만 부각되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극적으로 웃기거나 슬프거나 하는 그래서 매우 흥미롭고 감동적인 사건이든가 또한 엑스타시적이고 표증적 체험으로 돌출된다는 점입니다.
한동안 교계에는 마치 무슨 세상에 유행처럼 간증에도 유형별로 흐름이 있었습니다. 한동안은 전과자 출신들이 많이 간증하러 다니기도 했고 또한 북한에서 귀순한 자들이 전국 각지 교회들을 순회하며 간증하러 다녔고 신앙을 가졌다는 유명 연예인들도 간증무대에 많이 그리고 자주 오르는 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성공한 실업인, 천국과 지옥을 두루 보고 왔다는 자들, 죽을병에서 치유 받았다는 자들 등 주로 이런 자들이 간증의 주인공들로 등장합니다. 또한 요즘에 보면 복음송 가수들이 간증을 겸하여 한다며 교계 신문들에 초청해 달라고 광고까지 합니다. 이런 간증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구원을 이루는 순전한 신앙에 무익하고 복음의 합당한 건전한 신앙을 어지럽히는 위험성이 다분함을 아십니까?

대부분 지도자들은 이런 간증들이 교회에 어떤 유익을 주는 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에 대해 거의 구분치 않고
초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증은 대체적으로 은혜가 된다고 다수가 믿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잘 아는 분이 어떻게 해서 어떤 부흥사 협회에 잠시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그 부흥사 협회에는 주로 간증자들이 많이 속해 있었는데 그분도 그곳에서 소개해 주는 교회로 처음 간증하러 간적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이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된 것과 장애인이 된 것에 대해 그대로 간증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치고 나자 그 협회 회장되는 분이 부르더니 간증을 그렇게 하면 은혜를 끼칠 수 없고 감동을 줄 수 없으니 재미있게 웃기기도 하고 때론 슬픔도 줄 수 있도록 고치고 극적으로 과장도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러면 어렵다고 해서 그만 나오고 말았다고 했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간증이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간증이 설교 강단에 종종 불러져 선다는 것이며 대다수의 교인들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증내용이 주는 극적인 감동이나 간증자에게서 풍기는 느낌의 정도를 따라 그것을 은혜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베푸심이 되는 것인데도 진한 감동이나 재미있는 것이면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기 있는 연예인들을 초청 간증집회를 여는 날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데 인기 연예인의 간증은 엄청난 은혜를 끼치나 봅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은 정말 들어야할 순전한 말씀의 증거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딱딱하고
재미가 없고 은혜가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설교들을 보면 주로 간증같은 예화 투성입니다.
이렇게 간증은 말씀의 자리를 차지하고 교인들의 귀를 며 교회 구원을 이루는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그런 간증들 가운데 보면 성공한 기업자의 사례나 하나님의 오병이어 같은 이적의 축복으로 형편과 인생이 확 역전되었다는 내용의 간증들도 많습니다.
이들의 간증의 공통점은 베드로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확신하고 순종하고 나갔더니 엄청난 축복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간증을 듣는 교인들에게는 나도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기대와 부러운 마음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 간증자들이 이렇게 했더니 그렇게 되었더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도 그런 간증자들처럼 해보려합니다. 그들처럼 대박의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보면 간증자들이 말하는 축복의 요인이요 열쇠가 되는 이렇게 했다는
내용의요점의 대개가 표증적이고 공로적 행위에 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어떤 막바지에서도 주의 종을 잘 섬기고 십일조 잘하고 더없이 채워주신 것을 믿고 아낌없이 건축헌금 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했다고 하는 행위의 결과로 소개합니다.
결국 특별하고 좋고 담대한 자기 신앙행위의 공로적 상급으로 역전된 요인을 간증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런 간증의 문제와 위험성은 많은 교인들로 하여금 그런 신앙을 본받게 하고 따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목회자들이 그런 자들을 초청하여 간증하게 하고 자기 교인들로 하여금 자기 말 잘 듣고 헌금 잘하고 충성하도록 조련시키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베드로의 인생의 참 역전은 한순간 고기를 많이 잡은 기적같은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자기 위해 살던 육적인 인생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리고 자기를 그렇게 부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사는 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주관적 자기 체험이고 또한 고기를 많이 잡은 것만 부각되는 매우 부분적이고 얼마든지 가감될 수 있는 그런 위험성이 다분한 간증들이 그런 극적이고 인간기대 중심에 맞게 교회 강단에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강단은 하나님나라 된 교회의 합당한 모습으로 구원을 이르도록 자라게 하는 순전한
복음만이 중지되고 가르쳐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글쓴이는 고은 교회 황부일 목사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