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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태국의 물소신학
싸이촌
2016. 11. 17. 12:25
세계신학의 동향 |
고수케 고야마와 물소신학 |
일본인으로 태어나서 태국의 선교사로 활동하며, 태국 연합신학교에서 부부가 교수로 재직하였던 고수케 고야마(Kosuke Koyama, 小山 高村)는 금세기 아시아의 대표적 신학자로 볼 수 있다. 1974년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을 태국에 토착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신학적 전망으로서의 물소신학을 발표했다. 그 후 뉴질랜드의 오타고 대학교와 뉴욕 유니언 신학교에서 1996년 은퇴할 때까지 13권의 저서와 100개의 논문을 저술하면서 아시아 기독자협의회(CCA)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각종 위원회와 대회 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고야마의 신학적 발상과 관심은 아시아 신학의 분명한 이정표와 방향이다.
생애와 경력
고수케 고야마는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 제국주의 시대인 1929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그의 신학공부는 동경신학교에서 시작되었으며 1952년부터 미국 뉴저지에 있는 드류 신학대학에서 신학 수업을 하여 신학사(B. D) 학위를 취득한 후,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박사(Ph. D) 학위를 취득하였다.
1960년 일본 교단(United Church of Christ in Japan) 교회의 태국 선교사로 선발되어 부부가 태국 치엔마이에 있는 태국신학교에서 1968년까지 봉직하였다. 1968년부터 1974년까지는 서남아시아 신학교(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 in South East Asia)의 책임자(director)로 활동함과 동시에 서남아시아 신학대학원(South East As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의 학장으로 재직하였다. 여기서 고야마는 「서남아시아 신학 저널」(South East Asia Journal of Theology)의 편집자로 일하면서 영어논문을 꾸준히 게재하여 자신의 신학적 단상과 사상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1974년에서 1976년까지는 뉴질랜드 두네딘에 있는 오타고 대학에서 교수직을 수행하였다. 1983년 뉴욕에 있는 유니언 신학교와 WCC가 협력하여 신설한 ‘에큐메니컬 센터’의 초대 책임자 되면서 에큐메닉스와 세계기독교 학과(Ecumenics and World Christianity) 교수로 취임하였다. 1998년 유니온 신학교에서 은퇴할 때까지 그는 에큐메니컬 학과의 교수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그의 대표적 에큐메니컬 활동을 더듬어 보면 다음과 같다. CCA 관계로는 ‘아시아 선교사 협의회’(Asia Missionary Consultation)의 대표적 활동가였으며, ‘아시아 보수주의와 에큐메니컬의 협의회’(Conservative-Ecumenical Consultation in Asia)와 ‘불교와의 대화’(Dialogue with Buddhists)와 ‘신학 교육 협의회’(Theological Education Consultation) 등이 있다. WCC 관계로는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와 ‘인간 문제 연구’(Humanum Studies), 그리고 ‘타종교와 이데올로기 대화’(Dialogue with People of Other Faiths and Ideologies) 등 각종 분야에서 아시아의 대표적 신학자로 참여하였다. 나이로비 세계 대회(Nairobi Assembly) 등 WCC의 세계 대회에서 그의 강연은 꾸준히 등장하였다.
주요 신학사상
역사와 자연
태국에서 선교사롤 활동하던 고야마는 자연스럽게 불교라는 종교문화적 전통 사회에서 그리스도적 토착 신학을 발전시키려는 변증법적이며 선교적 신학을 전개한다. 이 신학적 전망과 신학 시도를 물소신학(Waterbuffalo Theology)을 통해 발표했다.
이러한 신학적 발상은 고야마가 태국 시골교회로 선교차 가는 길에 진흙 속에 있는 물소를 보면서 자신의 선교적 활동과 신학 교육을 반성한 것에서 얻은 주제이다. 이 물소신학은 태국에서 선교 활동과 복음이 태국인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태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way of thinking)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는 참신한 발상이 전제된 것이다. 태국의 농부에게 복음이 필수적인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국의 진정한 인간 상황과 대면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자각인 것이다. 이러한 고야마의 태국적 토착화 신학은 그리스도교 선교와 신학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서 고야마는 그리스도교 역사관에 관한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성서적 역사관인 직선적(linear) 역사관과 구원 사건을 “단번에 모두를 위함”(once-for-all-ness)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학 일반이 역사에 대한 편향 때문에 자연(nature)에 대한 무시와 거짓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질문은 태국의 몬순장마와 같은 자연 현상이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순환론적(circular) 시간 개념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단번에 모두를 위함”이라는 성서적 개념에 대하여 태국인을 지배하는 ‘수차례’(many-time-ness)라는 개념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 문제로 대비시키고 있다. 이 문제는 성서적 사고 방식과 태국인들의 기본적인 사고 방식 사이를 비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태국에서의 신학적 사고는 역사와 자연을 동등하게 함께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까닭은 성서의 하나님은 역사와 자연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야마는 두 이미지(image), 즉 직선과 순환이 몬순적 이해를 통해서 합쳐진다면 이것은 상승적 나선형(ascending spiral)이라는 이미지가 되고 이는 역사와 자연을 변증법적으로 통합시키는 신학 방법이 될 것이라고 토로한다. 이러한 신학적 표현과 방법론은 아시아 신학에서 토착화 신학과 상황적 신학의 물결을 일으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태국인의 자연에 관한 관심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기본적 범례(paradigm)이다. 그들의 자연에 대한 반성은 계절 순환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인간의 삶은 대우주의 광범위한 순환적 운동으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태국인들의 기본적인 역사와 삶에 대한 이해는 순환적 사고인 것이다. 자연 순환적 사고 방식은 평화와 안정을 주는 삶의 태도를 일으킨다.
이에 대해 ‘단번에 모두를 위함’이라는 성서적 역사 및 시간 이해는 자연순환론적인 사고 방식에 침전해 있는 태국인들에게는 충격적이며 아주 낯선 사고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태국 선교에서 성서적 하나님 이해는 매우 논쟁적인 사상이 된다. 물론 논쟁적이라는 개념은 부정적 관점에서만 아니라 긍정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탈출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로의 초청으로서의 논쟁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고야마가 물소신학에서 제시하는 신학적 전망은, 성서적 하나님 이해는 유목민적이고 반몬순적이며 직선적이기에 아시아인의 우주 순환론적인 자연관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성서가 말하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는 창세기 8장 22절을 인용하면서 규칙성(regularity)은 하나님의 약속(the promise of God)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땅에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고 기록되었는데,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고야마는 순환적 규칙은 순환 그 자체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존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하여 해석학적 변환을 시킴으로써 신학적 전환을 보여 준다. 따라서 ‘심음과 거둠’(자연)은 ‘약속의 하나님’(역사)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적 순환 그 자체는 결코 악마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물에 대한 보존과 창조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자연으로 기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재치 있는 결론에 다르면 몬순장마는 하나님을 젖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몬순장마의 주(Load)가 되신다는 것이다.
성서적 관점의 역사는 순환론적이 아니고 직선적이지만 태국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자연의 순환적 운동에 강력하게 영향받고 있다. 순환적 자연(circular nature)도 하나님의 영광을 직선적 역사(linear history)와 동등하게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 고야마의 결론이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자연과 역사의 종합, 즉 목적론적인 직선과 순환이 변증법적으로 종합하여(within) 모여지는 이미지(image)는 상승적 나선형(an ascending spiral) 관점의 역사 이해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이 시도되지 않고서 태국과 아시아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삶에 밀착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문화
고야마가 제기하는 문제는 ‘그리스도와 문화’로 정리될 수 있는 주제이다. 그는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적 상황 속에 살아온 경험을 근거하여 그리스도교 문화와 아시아 문화의 차이점에 대한 대화를 시도한다. 동양과 서양에 걸친 교차 문화적(Cross-Cultural) 대화이다. 여기서 고야마는 성서에 대한 그의 신학적 반영과 그의 아시아적 구체적 삶의 정황적 이해와의 재치 있는 대조를 신학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고춧가루와 불교주의의 소금”(Arisotelian pepper and Buddhist salt), 그리고 “평온 문화 안에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이해”(The Wrath of God in a Culture of Tranquility)라는 논문들을 살펴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나고 있다.
고야마는 태국의 선교 현장에서 그리스도교 복음을 전파하면서 하나님의 진노(God’s wrath)를 설교할 때 생기는 심각한 문제를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같이 불교문화는 냉정, 정적, 그리고 평온을 가장 높은 덕목으로 삼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사상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격정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태국 문화 안에서는 하나의 거침돌(scandal)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한 고야마의 관심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신학적 사상과 의미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태국의 불교적 문화 가운데서 어떻게 적절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느냐 하는 점이다. 진노와 분리시켜 말한다면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왜곡되거나 피상적인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며, 불교 문화권인 태국인들의 신에 대한 전이해는 하나님을 초연한(impassible) 존재라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교 사상은 자연히 역사적 관심을 소홀히 하거나 무시하게 한다. 이 같은 아시아의 문화적 배경을 충분히 염두에 두면서 진정한 거침돌(anthentic scandal)로서의 선교를 위한 문화적 전(前) 이해를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분별하게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이해를 전제로 한 복음의 해석과 신학적 주장을 하는 것은 태국 사회의 불교 문화와 만나게 될 때의 문화적 차이와 전 이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고려가 소홀히될 때 그리스도교의 신학이 평범하게 되거나 진정한 복음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복음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도록 하기 위해서 불교 문화의 평온주의 문화에 젖은 아시아인들을 위해서 두 문화의 차이에 대한 대화는 중요한 신학적 과제라는 것이다.
고야마는 서양 문화 속에서 형성된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시아의 문화 속에서 바람직하게 증거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Agape)과 변증법적으로 연결되어 접근되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는 역사 속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으로 증거해야 한다. 성서의 하나님은 고통의 하나님(Pain of God)이지 초연한 그리스도(Christos apathes)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야마는 이 두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진정한 거침돌을 이해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교 신학의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야마의 후기 저서인 『후지산과 시내산: 우상의 비평』(Mt. Fuji and Mt. Sinai: A Critique of Idols)에서 그의 신학은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인의 경험에 의지하여 개인적이며 국가적인 자기 정당화(self-righteousness)의 우상화와 십자가의 신학의 빛에서 본 하나님의 대답이라는 변증법적 시각에서 그의 신학을 확장하여 전개한다.
“하나님과 바알 사이의 절름발이 춤”(Limping dance between God and Baal)에서 고야마의 신학 특징을 잘 엿볼 수 있다. 인간들은 야웨와 바알 사이에 머뭇거리는 양다리 춤을 추고 살 수밖에 없는 실존임을 제시한다. 동시에 인간의 역사도 우상 숭배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는 항상 역사에 상존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어떤 역사도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여기서 고야마는 다시 역사(history)와 자연(nature)은 함께 파악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역사와 자연은 하나의 현실로 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바알의 정치는 ‘증식(increase)이념’으로서 경제, 정치, 심리학, 문화, 종교의 자기 중심적 획득을 지향하는 것으로 본다.
고야마의 신명기 8장 17, 18절에서 바알의 재산 증식 정신을 비평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너희가 마음 속으로 이 재물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모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그러나 주 너희의 하나님이, 저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려고, 오늘 이렇게 재산을 모으도록 너희에게 힘은 주셨음을, 너희는 기억해야 한다”(신 8:17-18, 표준새번역).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 존재의 핵심 기조로 역할하는 계약신학은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루었다는 사상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바알정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재산의 증가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다. 증식의 공동체를 억압하고 짓누를 수단에 의해서 성취될 때 그것은 우상적인 것이 된다. 극단적 형태로서 인간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적 제의(cult)는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희생을 강요하게 마련이다.
현대의 군비 경쟁 역시 풍요와 우상 숭배에 관련되어 있다. 일본 제국이나 히틀러의 제3제국은 바알의 영광의 교리에 따른 것으로 본다. 인간은 바알의 영광의 교리에 열광하고 동시 야웨의 신앙에 감동을 받는다. 인류의 역사는 한 면에서 억압되고 다른 면에서 문명의 시작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제도라도 인간의 희생을 강요할 때 단호히 거절되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
고야마는 세계는 ‘야웨를 따르는 부류’와 ‘바알을 따르는 부류’의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고 본다. 이것을 그는 역사 안에 하나님 통치의 근본적 이미지로 이해한다. 여기서 고야마가 지향하는 관점은 ‘두 문화적 관점을 비판적으로 통합하는 성서적 이미지’인 것이다. 역사의 심연에는 모든 우상 숭배의 형태를 심판하며 동요하는 하나님의 마음(agitated mind of God)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흐름에서 야웨와 바알의 사이에서 양다리 춤을 추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이 하나님의 마음이 구원의 근거라는 것이다.
이미지적 신학 사유
고야마의 신학 저술은 단편적인 논문과 단편적 신학 명상으로 엮어져 구성되었다. 그의 신학적 표현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서론,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이어지는 글쓰기 형식이 아니다. 전통적인 서구 신학자의 글쓰기 방식과 대조되는 재치와 유머러스한 스타일의 예화적 글쓰기이다. 이러한 신학적 표현은 고야마의 신학적 사유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이미지(image) 중심의 시각적 표현은 새로운 이해의 조망을 열어 준다. 서구의 전통에서 형성된 신학은 아시아의 문화적 상상에서 재형성하기 위해서 이러한 해체적 글쓰기의 방법은 당연한 것이다.
대부분 아시아 신학자들은, 예를 들면 C. S. 송을 포함하여, 새로운 사유 모델을 들고 나왔다. 이야기 신학(story-telling)의 초기적 형태로, 고야마의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신학 저서와 신학적 사유의 표현은 아시아 신학을 세계 교회 신학에 아시아적 특색을 표현하는 해석학적 지평으로 자리매겨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고야마의 저서 『십자가에는 손잡이가 없다』(No Handle on the Cross)에서 그는 시각적 이미지의 신학 사유를 자유롭게 전개하고 있다. ‘손잡이 없이’라는 글에서 아예 삽화까지 그려 넣으면서 신학적 사유를 표현해 나가고 있다. 여기서 그는 붓다, 레닌, 그리고 그리스도를 손바닥 그림의 다양성을 통해서 차이점을 묘사한다. 문화와 역사와 경험의 다양성을 손바닥의 삽화를 통해서 표현하는데 붓다의 손은 물갈퀴 손으로 레닌의 손은 주먹 쥔 손으로 그리스도의 손은 펴져 있지도 않고 주먹 쥐지도 않은 못 박힌 손바닥으로 표현한다. 이 그림에 대한 자세한 이미지를 신학적으로 재미있고 유머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결론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형태의 손, 예를 들면 환영 표시의 손, 거절의 손, 희망 표시의 손, 절망 표시의 손, 결단의 손, 사랑의 손, 이해의 손 등은 당연히 못 박힌 손과 연결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왜냐 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손은 고통 때문에 펼 수도 쥘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손길은 하나님을 초대 손길이라고 주장한다. 고야마는 이것을 ‘약함’(weakness)과 ‘어리석음’(foolishness) 이미지뿐 아니라 폭발적이고 영적인 에너지를 잉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지 모델을 활용하는 고야마의 신학적 표현과 사유 방식은 풍부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통해 신앙의 중심적 견해를 잘 표현하고 있다. 신학의 핵심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이 방법은 고야마 신학의 빼 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나가는 말
고야마는 대표적인 아시아 신학자로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였다. 아시아의 다양한 종교 문화적 경험과 불교, 힌두교, 신도(神道)가 반영된 그의 신학적 작업은, 아시아 신학을 서구적 전통 신학과의 같음과 다름이 동시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밝혀 주었다.
현대의 아시아 신학의 과제가 서구신학의 지배에서 벗어나 아시아적 재형성의 임무가 있음을 끈질기게 제시하였다. 아쉬운 점은 후반기의 그의 신학적 작업은 아시아 교회보다 서구의 교회를 위해서 아시아적 신학의 견해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고야마의 신학적 현장이 아시아 밖의 현장이었던 현실이 작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본 국적을 끝까지 지켰다. 고야마는 진정한 에큐메니컬 신학의 지평에서 아시아의 목소리를 대변한 신학자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고수케 고야마의 주요 저서
Waterbuffalo Theology, Orbis Books, 1974.
No Handle on the Cross, Orbis Books, 1976.
50 meditation, Orbis Books, 1979.
Three Mile an Hour God, Orbis Books, 1980.
Mount Fuji and Mount Sinai: A Critique of Idol, Orbis Books, 1985.
서창원 |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이다.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는 『살림의 신학』 등 다수가 있다.
출처: 기독교사상, 글쓴이: 서창원
출처 : 천국 밑에 태국! Thai Mission
글쓴이 : Pet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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